제목
[광복 80주년 단편소설] ⑧ 정명섭 ‘한양으로 가
페이지 정보
작성자
sans339
등록일
2025-10-04
조회수
17
관련링크
본문
캉카스백화점
[광복 80주년 단편소설] ⑧ 정명섭 ‘한양으로 가는 길’ ― 13도 창의군을 기억하며 일러스트=박상훈싸늘한 바람이 얼어붙은 길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마차와 사람들이 무수히 지나가면서 만들어낸 흔적들이 깊게 파인 길 위에 선 허위는 옆에 선 부하에게 물었다.“여기서 한양까지는?”대한제국 원주 진위대에서 병사로 복무하던 이동석이 대답했다.“30리만 더 가면 동대문입니다.”“반나절 거리군.”허위의 중얼거림에 이동석이 맞다고 작게 얘기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뒤처진 부하들이 합류하기를 기다리던 허위는 지난날을 떠올렸다. 작년 7월, 이토 통감과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 대신들이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한 것을 핑계 삼아 황제 폐하를 핍박해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비밀리에 군대를 해산시키기로 했다. 손발을 다 묶어두고 집어삼킬 속셈이었다. 해산명령을 받은 도성의 시위대는 일제히 총을 들고 나서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고, 한양을 탈출해서 각지의 의병들과 합류했다. 지방의 진위대 역시 무기고를 열어서 총기를 손에 넣고 의병들과 손을 잡았다. 그렇게 정미년의 여름은 나라를 지키고자 하던 의병과 병사들이 손을 잡으면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여세를 몰아서 13도 창의군이 결성되어서 경기도 양주에 집결했다. 이강년과 민긍호 같은 의병장들이 부하들과 함께 합류했는데 그 숫자가 수천에 달했고, 신식 총기로 무장한 해산 군인들도 적지 않게 집결했다. 명망 있는 사대부인 이인영이 대한관동군창의장으로서 13도 창의군을 이끌었고, 을미년부터 의병을 일으켜서 활동하던 허위는 군사장으로서 활약했다. 이들의 목표는 도성인 한양을 탈환하고 황제 폐하를 구출하는 것이었다. 허위는 한양 탈환을 위해 선봉 부대를 이끌고 진격하는 중이었다.“13도 창의군을 결성한 게 작년 11월이었으니 어언 두 달이 지났구나.”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말한 허위에게 이동석이 대답했다.“왜놈들이 우리 군대를 해산한 게 작년 8월이었습니다.”“원주 진위대가 봉기해서 의병에 합류한 게 그 이후고, 나라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되었지.”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허위의 턱수염을 흔들었다. 흩날리는 턱수염을 쓰다듬은 허위의 시선은 여전히 한양을 향했다.“통감부와 매국노 대신들이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황제 폐하를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산시킨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결국 대한제국을 통째로 집어삼키려고 하는 것인 분명해.”“맞습니다. 그래서 제가 있던 원주 진위대에서도 민긍호 특무 정교를 중심으로 봉기를 일으킨 것이죠.”“훈련받은 군인들이 합류하면서 의병들의 세력이 더욱[광복 80주년 단편소설] ⑧ 정명섭 ‘한양으로 가는 길’ ― 13도 창의군을 기억하며 일러스트=박상훈싸늘한 바람이 얼어붙은 길을 스치고 지나갔다. 우마차와 사람들이 무수히 지나가면서 만들어낸 흔적들이 깊게 파인 길 위에 선 허위는 옆에 선 부하에게 물었다.“여기서 한양까지는?”대한제국 원주 진위대에서 병사로 복무하던 이동석이 대답했다.“30리만 더 가면 동대문입니다.”“반나절 거리군.”허위의 중얼거림에 이동석이 맞다고 작게 얘기하고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뒤처진 부하들이 합류하기를 기다리던 허위는 지난날을 떠올렸다. 작년 7월, 이토 통감과 이완용을 비롯한 친일파 대신들이 헤이그에 특사를 파견한 것을 핑계 삼아 황제 폐하를 핍박해서 물러나게 만들었다. 그것도 모자라서 비밀리에 군대를 해산시키기로 했다. 손발을 다 묶어두고 집어삼킬 속셈이었다. 해산명령을 받은 도성의 시위대는 일제히 총을 들고 나서서 일본군과 전투를 벌였고, 한양을 탈출해서 각지의 의병들과 합류했다. 지방의 진위대 역시 무기고를 열어서 총기를 손에 넣고 의병들과 손을 잡았다. 그렇게 정미년의 여름은 나라를 지키고자 하던 의병과 병사들이 손을 잡으면서 뜨겁게 달아올랐다. 그 여세를 몰아서 13도 창의군이 결성되어서 경기도 양주에 집결했다. 이강년과 민긍호 같은 의병장들이 부하들과 함께 합류했는데 그 숫자가 수천에 달했고, 신식 총기로 무장한 해산 군인들도 적지 않게 집결했다. 명망 있는 사대부인 이인영이 대한관동군창의장으로서 13도 창의군을 이끌었고, 을미년부터 의병을 일으켜서 활동하던 허위는 군사장으로서 활약했다. 이들의 목표는 도성인 한양을 탈환하고 황제 폐하를 구출하는 것이었다. 허위는 한양 탈환을 위해 선봉 부대를 이끌고 진격하는 중이었다.“13도 창의군을 결성한 게 작년 11월이었으니 어언 두 달이 지났구나.”감개무량한 표정으로 말한 허위에게 이동석이 대답했다.“왜놈들이 우리 군대를 해산한 게 작년 8월이었습니다.”“원주 진위대가 봉기해서 의병에 합류한 게 그 이후고, 나라의 운명은 바람 앞의 등불이 되었지.”때마침 불어온 바람이 허위의 턱수염을 흔들었다. 흩날리는 턱수염을 쓰다듬은 허위의 시선은 여전히 한양을 향했다.“통감부와 매국노 대신들이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황제 폐하를 퇴위시키고 군대를 해
캉카스백화점
- 이전글 ▲
- 열린 마음으로: 다른 문화의 이해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