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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서울 성북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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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ans339
등록일
2025-06-30
조회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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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데일리 장병호 기자] 서울 성북구 소재 명승 ‘성북동 별서’ 구역 내 목조 건물에서 불이 나 소방당국이 4시간 만에 완진했다. 30일 서울 성북구 ‘성북동 별서(성락원)’ 내 송석정에서 화재가 발생,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30일 소방당국에 따르면 오후 12시 45분께 성북동 별서 송석정에서 난 불은 4시간 10분만인 오후 4시 58분께 완진됐다. 소방당국이 오후 1시 43분 발령한 대응 1단계도 해제됐다. 국가유산청은 “이번 불로 건물이 반파됐으며 주변 관목 등 추가 피해는 없는 것으로 파악됐다”며 “현재 피해 환형 추가 확인을 휘애 소방당국이 현장 조사를 진행 중이다”라고 전했다.불이 난 송석정은 1950년대에 신축된 건물이다. 이날 불로 송석정의 기둥이 심하게 탔다. 지붕 내부 기와 위쪽에서도 연기가 발생해 지붕 파괴 및 진화작업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소방당국은 국가유산청과 협의를 통해 지붕을 해체하고 진화 작업에 나섰다.이 불로 송석정 내부 의자, 탁자 등 집기류 60% 가량이 소실됐다. 나머지 40%는 외부로 반출됐다. 인명 피해는 없는 것으로 확인됐다.서울시에 따르면 송석정은 정자와 사무실 용도로 사용하던 개인 소유 건물로 시에서 매입을 준비하고 있다. 성북동 별서 전체가 명승으로 지정된 만큼 서울시와 국가유산청은 보조금 예산을 집행하고 협의를 거쳐 정비 방향을 정할 예정이다.성북동 별서는 조선시대 대표적 별서정원(저택에서 떨어진 경승지나 전원지에 세운 별장)다. 한국 전통 정원의 원형을 잘 보존하고 있는 문화유산으로 평가되며 명승으로 지정됐다. 앞서 ‘성락원’이라는 이름으로 2008년 명승에 올랐으나 조성자를 두고 부실 고증 논란이 일었다. ‘조선 철종 대 이조판서 심상응’이 소유했다고 알려졌으나 심상응은 존재하지 않은 인물로 확인됐다. 이후 조선 고종 때 내관이자 문인인 황윤명(1844~1916)이 조성자로 밝혀졌다. 2020년 ‘성락원’ 명칭의 명승 등록이 해지된뒤 ‘성북동 별서’로 다시 명승에 등록됐다.장병호 (solanin@edaily.co.kr) 인천=신석현 포토그래퍼 “주 언제나 우리와 함께 계셔 / 하루 또 하루가 늘 새로워 / 그 선한 힘이 우릴 감싸시니 / 믿음으로 일어날 일 기대하네.”29일 오후 인천 남동구 인천제일교회(이제일 목사) 비전홀에서 열린 ‘비전선교사 파송 예배’ 현장은 CCM ‘선한 능력으로’가 울려 퍼지며 감동을 더 했다. 가사 내용은 특별 찬양을 부른 비전선교사들의 결연한 의지를 대변하는 듯했다. 인천=신석현 포토그래퍼 특히 맨 앞줄에 선 이들은 ‘가정’ ‘이웃’ ‘사회’ ‘일터’ ‘학교’ ‘열방’ ‘교회’라고 적힌 플래카드를 들고 있었다. 자신들이 파송 받을 7가지 영역에서 선교적 삶을 살아가겠다는 다짐을 시각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었다. 이날 인천제일교회는 41명의 비전선교사를 파송하며 지역사회와 세상 속에서 선교적 삶을 실천할 것을 다짐했다. 인천=신석현 포토그래퍼 설교를 맡은 주안대학원대 교수 정승현(사진) 목사는 사도행전 2장 16~21절을 본문으로 “모든 사역에 앞서 기도가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정 목사는 “베드로가 공포와 위협 가운데서도 담대히 복음을 선포할 수 있었던 것은 기도에 전념했기 때문”이라며 “비전선교사들도 저녁 시간을 잘 관리해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 기도에 전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당부했다. 교회 시스템 넘어 ‘삶’으로 선교인천제일교회는 지난해 ‘새로운 10년(New Season)’ 비전 아래 ‘1만명 성도, 3000명의 비전선교사, 300명의 파송선교사’를 목표로 설정했다. 작년 34명의 1기 파송에 이어 이번에 2기 41명을 추가 파송했다. 비전선교사는 자신이 속한 삶의 자리에서 부르심에 합당한 행함과 사랑을 실천하며 세상으로 파송 받은 그리스도의 제자를 의미한다. 가정 이웃 일터 등 7가지 영역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를 전하는 역할을 한다. 이제일 인천제일교회 목사. 인천=신석현 포토그래퍼 이제일 담임목사는 “교회가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생기는 시스템과 제도화를 넘어 성도들이 선교적인 삶을 살아야 한다는 깨달음에서 시작됐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그는 “예수님이 이 땅에 선교사